우리는 늘 표정으로 타인을 읽는 단서를 찾는다. 최후엔, 치사하지만 일기까지 들춘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주는 선물을 파악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선물은 포장지 아래 메시지를 숨긴 채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다. 뭔가 실제로 꼬였던 일들, 평생에 걸친 착각 혹은 그간 숨겨왔던 진심까지. 선물은, 선물 자체가 주는 친밀함, 서로 주고 받았던 경험, 선물 고르느라 얼마나 고심했을까 라는 감동, 예산의 규모, 적합성에 대한 검토, 상점의 환경, 타인의 의존, 이 모든 것이 융합된 명사이기 때문이다.
선물만큼 확실한 감정이입의 행위도 없다. 선물의 선택기준은 관계의 중요성과 소통 자체를 상징한다. 좋은 선물은, 받는 사람의 기호나 취미를 확인하는 정도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선물한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반대로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자체를 결정한다.
황당한 선물은 한눈에 파악되는 특성이 있다. 볼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못난이 삼형제 인형 같은 건 보통 반영구적이라서 잘 먹었다, 잘 썼다, 낡았다 같은 식의 변명으로 치워버릴 수 없다. 나쁜 시나리오는 선물한 사람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을 때 일어난다. 우리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에 자기가 준 선물이 잘 안치돼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집에 오기 5분 전 온 집안에 먼지떨이 펀치를 날려야 한다. 제일 무서운 건 그것도 모르고, 말짱하게 놓인 선물을 본 상대가 너무나 흐뭇해진 나머지 다음에도 비슷한 걸 사줄 때다.
사람들은 형편없는 선물이 주는 경제적, 정신적 대가를 잘 안다. 자기 취향이 아닌 꽃무늬 넥타이나 이미 가진 CD를 받았을 때 저절로 표정이 가라앉는다거나, 그래도 뭔가 행복한 단어를 생각하려고 애쓸 때 드러나는 어색한 웃음... 사실 선물 자체에 만족한다면 문제는 없지만, 선물의 트라우마는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분홍색 아니면 입지 않던 소녀에게 아버지가 황토색 원피스를 사줬다면, 게다가 심바가 프린트된 풍선껌 원피스 한 벌을 더 선물했다면 그건 딸에게 무신경한 아버지란 얘기다. 스스로 수녀처럼 고상한 사람에게 누군가 카마수트라 책을 선물했다면, 그는 무너지는 심장을 감추며 다만 웃어 보일 뿐이겟지. 금욕적인 연인이 바이브레이터를 선물했다면 자기가 못 주는 부분을 그걸로 보충하라는 걸까(고맙지만, 됐거든)?
20년 동안 생일선물로 넥타이만 받는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주변 사람들 모두 넥타이만 너무 좋아해서일까? 그는 좋아하는게 따로 없나? 아무도 그의 취향에 관심이 없나? 그는 너무 까다로운 사람이라 그를 만족시키기 너무 힘들어서?
친구가 선물한, 불타는 빨강에 검은 레이스로 트리밍된 속옷을 입다 말고 문득 길에서 팻말을 두르고 호객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게다가 사이즈도 두 치수 더 크다면? 예수 탄생을 형상화한 골동품 도자기 세트가 창고에서 10년은 방치된 듯 이가 빠져있다면? 세상에서 쥐가 제일 무서운데 여덟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은 쥐 인형세트를 받았다면?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데 정원 화보가 화려하게 수록된 살림책을 선물 받았담ㄴ?
이모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라면서 보라색 귀고리와 벨트를 선물했다면? 장모님이 녹색 들판에서 웃고 있는 양이 덧대진 카디건을 선물했다길래 다 같이 외식할 때 예의로 한 번 입었는데, 웨이터가 애들 메뉴 보겠냐고 묻는다면? 남자친구가 선물한 잠옷 앞부분 가운데 구멍에 지퍼가 달려있다면? 또 그게 섹시함은 아예 원단 빵점인 할아버지용 잠옷이었다면?
주방에서 쓰는 세제를 알아내 리필용 제품을 선물한 남자는 좀스러운 걸까, 타고난 검약가일까? 고모할머니가, 자신이 늘 먹던거라며 준 캐러멜을 씹다가 물컹해서 뱉었더니 벌레가 반이나 잘려있다면 어쩌지? 벌레의 몸통을 잘라 먹는것과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그 과자가 너무 오래됐다는 말을 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죄악일까?
확실히 서로를 만족시키는 선물은 취향만큼 운도 변수이다(오래전에 선물받은 레코드는 턴테이블 옆을 오래 지키지 않았다. 박물관에 진열될 모호한 선물이 되었기 때문에). 돼지 모양의 줄자는 물건의 길이를 잴 일 없는 이에겐 무용지물인 것이다. 그러나 선물의 좋은 점은 맘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커피광인 친구에게 선물한 '한 개'의 머그컵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싱글'생활에 대한 '저주'일 수 있다. 워낙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이 다이어리를 선물받았다면 그의 엉망인 메모습관에 대한 충고일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꽃을 선물받았다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볼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예쁜 꽃이 다 무슨 소용이야?
쿠키 선물은 마구 먹어대는 결혼 직전의 신부 친구에 대한 경고이며, 상대의 전문 분야에 대한 책선물은 그가 이미 가지고 있으리란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해서일 수 있다. 석탄과 타르가 함유된, 엄격하고 산업적인 구석이 있는 비누 선물도 '당신을 사랑해요'보다는 '제발 좀 씻으세요'라는 의미를 풍길 수 있다. 또 누군가가 반창고와 붕대를 선물했다면 그건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묶는' 것.
좋은 징조를 담은 선물도 있다. 아이팟, 팜, 매끈매끈한 실버 휴대폰, 기가바이트가 내장된 컴퓨터는 더 자주 소통하자는 의미로 내민 손이고, 연결되고 싶어하는 욕망이며, 상대에게 기꺼이 많은 돈을 쓸 수 있다는 마음이다. 그 자체로 미래뿐만 아니라 간직할 가치가 있는 과거도 공유하는 것, 기억으로 만든 선물이다.
상대의 사진이 프레임된 액자나 시계도 즐거운 선물이다. 잠재적인 나르시즘을 자극하니까. 냄비나 프라이팬, 숟가락을 주는 사람의 애정은 담백하다. 그는 상대가 해준 밥을 함께 먹고싶어 한다. 향수선물이 약속하는 것도 이제 그만 괴로워하고 맘 편하게 좀 보내봐,라는 의미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아이템은 당신을 사랑한다는(적어도 사랑하는 것 같다는) 신호다. 이니셜을 새긴 다이아몬드는 '비싸기만 한 돌멩이'를 영원히 잊을 수없는 선물로 둔갑시킨다. 물 속에 몸을 던지기 전에 사랑하는 이에게 주려던 '큰 돌덩이'를 무시했던 건 나르시스 뿐이었지만.
썩기 쉬운 선물에는 적대감도 은닉돼 있다. 연인이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면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과일은 풍요로움과 재생의 상징이지만, 계모가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를 부인하던 끝에 죽은 체 기절해버린 백설공주를 무의식 상태에서 융처럼 재구성해보면, 선물로 주고받는 사과는 분명 '독을 품었'다.
계급제도 속에서 시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돼지들의 선물도 있다. 날것 그대로의 뇌물 말이다. 뇌물을 전한 사람들은 받는 사람을 내쫓으려는 은밀한 계략을 품고 있다. 똥 푸는 삽이 날씨에 상관없이 이 땅 저 땅 갈아엎는 것과 같다. 아무도 냄새 나는 그 길로 가지 않을 테니까.
아무 의미 없는 선물도 있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가끔 담배는 그냥 담배일 뿐이다. 그런데 선물을 현금이나 카드로 받을 때 상대의 미지근한 마음 때문에 상처받을지도 모르지만, 손에 쥐어진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임무가 주어진 거다. 써라. 써버려라.
남자가 저지르는 흔한 실수는 자기가 받고 싶은 걸 상대에게 주는 것이다. 그게 사랑과 평화, 온정의 최대치를 느낄 크리스마스에 <에이리언> DVD 시리즈를, 물을 무서워하는 여동생에게 스쿠버 다이빙 용품을, 기계치 동생에게 게임기를 선물하는 이유다. 한편 연주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피아노는, 선물하는 사람이 자기 중심적인 쾌락주의자임을 말해준다. 받는 사람이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사실보단, 선물하는 동안 스스로 느끼는 쾌감만 중요하니까. 도대체 누가 선물을 주는 행위를 이타심의 시작이라고 했을까. 이 영역에서 속옷은 예외다. 문명화된 남자들은 너무나 익숙하게 란제리를 산다. 촌스러운 디자인이나 라디에이터 위에 놓았다간 금방 녹아버릴 소재를 피하는 건, 속옷은 간접적으론 선물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단점은 선물할 대상이 적다는 것이다. 가족도, 친척도, 친구 마누라도 제외해야 하니까.
사실, 상대가 늘 갖고 싶어했던(닦달 끝에 받은 성의 없는 선물이 아니라, 어쩐지 사게 되진 않는 것이나 받기 전까진 갖고 싶은지 몰랐던) 선물을 하는 빼어난 취향, 깊은 사려로 무장한 노련한 선물 구매자는 많다. 그 점에 관해 여자들은 남자보다 훨씬 능란하다. 여자가 감정이입이 빠르고 보다 섬세한 레이더를 가져선지, 남자들이 생각없고 게으르고 이기적이어서인지, 언젠가 한 여자 미술가에게 빈티지 전화기를 선물받았을때, 그런 선물은 불타는 건물에서도 제일 먼저 꺼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답례로 전동기구 세트를 선물했다. 그녀는 혼자 사니까 집수리며 뭐며 손이 두루 필요할 테고, 게다가 아주 위트있는 선물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DIY 같은 건 관심도 없던 그녀가 드릴로 당장 내 머리에 구멍을 내지 않은 건 처음 사용하기 위해선 몇 시간 기다려 충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남자에게 지나치듯 말한 것들, 티파니 다이아몬드 귀고리나 좋아하는 꽃을 예기치 않은 순간에 선물 받는 꿈을 꾼다. 3개국에 출장 간 남자가 세 개의 다른 선물을 사올 때, 여자는 어느 나라에서건 자신을 떠올렸던 그 마음을 기억한다. 5천원 짜리 커피잔을 선물받았는데, '위시 리스트'에 없었다고 해도 커피를 마실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건 진실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선물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늘 사려 깊은 선물을 받아 볼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선물한 멈춘 골동품 시계를 보며 나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억지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이충걸 * '책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돈 못 벌면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속물'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GQ KOREA」편집장. 저서로는 『슬픔의 냄새』,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등이 있다.
선물의 의미에 대해 프로이트가 말해주지 않은 것들
드라마틱 trend&tradition
2007. 11
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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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걸